회사에서 디지털 없는 회의 실험기

디지털 의존의 회의 문화 — 효율처럼 보이지만 집중력을 잃다

필자는 회사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면서 수없이 많은 회의를 경험했습니다.
그 회의들은 겉보기엔 모두 ‘효율적’으로 진행되는 듯했습니다.
모두가 노트북을 열고, 화면에 떠 있는 회의록과 자료를 동시에 확인하며 빠르게 의견을 주고받았죠.
누군가는 실시간으로 문서를 수정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단체 채팅방에 회의 요약을 올렸습니다.
겉으로는 모든 게 체계적이고 스마트해 보였지만, 어느 순간 필자는 회의의 본질이 사라지고 있다는 불편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회의 중 누군가의 시선은 항상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말을 듣는 듯하지만, 사실은 메신저 알림창을 확인하고, 이메일을 답장하고,
가끔은 온라인 쇼핑몰을 훑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회의 시간은 길어졌지만, 집중의 밀도는 점점 낮아졌습니다.
심지어 회의가 끝난 후 “오늘 무슨 얘기 나왔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오갈 정도였죠.

그때 필자는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디지털 도구로 업무 효율을 높이려 했지만,
결국 그 편리함이 몰입력과 사고력을 갉아먹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스마트 기기는 분명 일을 빠르게 만들어줬지만, 동시에 깊이 있는 사고의 여유를 빼앗고 있었습니다.
회의는 더 이상 사람들의 ‘의견 교환의 장’이 아니라,
‘자료 확인과 타이핑의 공간’으로 변해버렸던 것입니다.

그 무렵 팀의 한 신입사원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회의 시간에 노트북을 닫으면 좀 불안해요. 뭔가 일을 안 하는 기분이 들어서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불안해서 화면을 켜둔다’는 말, 그것이 바로 우리가 디지털에 의존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정보가 끊기면 불안하고, 손이 멈추면 뒤처질까 걱정하는 문화.
그건 효율이 아니라 디지털 중독의 징후였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어느 날 결심했습니다.
“한 번쯤은 모든 기기를 내려놓고, 진짜 대화만으로 회의를 해보자.”
효율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그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집중과 관계를 되찾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디지털 없는 회의’라는, 작지만 큰 실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시도의 긴장감 — 디지털 없이 마주 앉은 사람들

회의실 문을 열었을 때, 평소와는 다른 정적이 느껴졌습니다.
노트북도, 태블릿도, 스마트폰도 없이 오롯이 종이와 펜만 놓인 회의실.
팀원들은 조금은 어색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평소엔 화면 뒤에 숨을 수 있었지만,
이날은 서로의 눈을 직접 마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회의가 시작되자, 모두가 낯선 공백에 당황했습니다.
자료를 열어 확인할 수도 없고, 실시간으로 검색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화면에 의존해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지 새삼 느껴졌습니다.
한 사람이 말하기 시작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괜히 시선을 피하거나 손을 꼼지락거렸죠.
회의 중 스마트폰을 꺼내 들던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던 겁니다.

처음 10분은 불안함이 엄습했습니다.
‘이렇게 느리게 회의해도 괜찮을까?’
‘혹시 중요한 정보를 놓치면 어쩌지?’
하지만 그 불안감은 곧 사라졌습니다.
누군가 메모를 하며 차분히 의견을 덧붙이자,
이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깊이 있는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말의 속도가 느려진 대신, 사람의 생각이 드러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죠.

회의가 절반쯤 진행될 때, 한 팀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집중이 잘 돼요. 오히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더 들어오네요.”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회의의 흐름이 이전보다 훨씬 ‘인간적인 리듬’을 되찾고 있었습니다.

그날 회의가 끝날 무렵, 필자는 종이에 빽빽이 적힌 메모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화면을 닫는 대신, 마음을 열었던 시간.
그 작은 변화가 회의 문화 전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순간이었습니다.

 

 

대화의 복귀 — 사람의 목소리가 중심이 된 회의

디지털 기기를 내려놓자, 회의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자료를 공유하거나 검색할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사람의 ‘기억’과 ‘생각’이 대화의 중심이 되었죠.
누군가는 지난 프로젝트에서 느낀 경험을 떠올렸고,
다른 누군가는 고객의 반응을 직접 들은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이전에는 숫자와 그래프로만 존재했던 정보가, 이제는 사람의 언어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필자는 그 모습을 보며 새삼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회의에 참여하면서도, 정작 서로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모두가 각자의 노트북 화면 속에서만 논리적으로 싸우고 있었을 뿐,
진짜 공감이나 협업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장치를 내려놓자, 사람들의 표정과 어조,
말 뒤에 숨어 있던 감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회의는 ‘정보 교환의 장’이 아니라,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공유하는 대화의 장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이전 회의에서는 말이 많은 사람이 중심이 되었지만,
이날은 평소 조용하던 팀원이 더 자주 의견을 냈습니다.
디지털 기기가 없으니 말이 빠른 사람보다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주목받는 구조로 바뀐 것입니다.
누군가의 손글씨 메모가 모두의 집중을 끌었고,
그 한 줄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확장되기도 했습니다.
회의의 흐름은 느려졌지만, 그 느림 속에서 오히려 ‘생각의 결’이 더 또렷해졌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팀원들 사이에는 오랜만에 웃음이 돌았습니다.
화면 대신 얼굴을 마주하고 나눈 대화가 남긴 여운이었죠.
그날 이후로 필자는 깨달았습니다.
회의의 효율은 빠른 공유나 디지털 도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람 사이의 집중과 공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요.
디지털을 잠시 멈추자, 우리는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변화의 시작 — 진짜 효율은 ‘속도’가 아니라 ‘집중’에서 온다

‘디지털 없는 회의’ 실험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몇몇 팀원들은 다음 회의에서도 자발적으로 노트북을 열지 않았고,
회의록을 직접 손으로 적어가며 서로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누구도 “시간이 아깝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방식이 훨씬 머리에 남아요.”, “집중이 잘돼요.”라는 의견이 이어졌습니다.

물론 모든 회의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수는 없습니다.
자료 공유나 데이터 확인이 필수적인 회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필자는 그 이후로 중요한 회의나 아이디어 회의만큼은 ‘디지털 프리 회의’로 운영했습니다.
그 결과, 회의의 질이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누구도 끝까지 듣지 않던 아이디어가 끝까지 이어지고,
결정 과정에서 ‘함께 생각한 흔적’이 남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회의 이후’에 나타났습니다.
회의를 마친 뒤에도 팀원들이 조금 더 오래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노트북을 닫고, 손에 스마트폰 대신 커피잔을 들고,
서로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나누는 시간이 늘어난 것입니다.
그 작은 대화들이 팀워크를 단단히 묶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필자는 그 경험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도구는 분명 효율을 높여주지만, 진짜 생산성은 집중에서 나온다는 것을요.
속도를 높이기 위해 스마트 기기를 의존하던 습관을 잠시 내려놓자,
오히려 일의 본질과 사람의 생각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그 집중의 힘이야말로, 디지털 디톡스가 만들어주는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지금도 필자는 가끔 회의실 문을 열기 전, 마음속으로 다짐합니다.
‘오늘만큼은 화면 대신 사람을 보자.’
그 단순한 문장이, 회사의 회의 문화를 조금씩 바꾸고 있습니다.
디지털 디톡스는 거창한 실험이 아니라,
하루의 한 시간, 한 번의 회의, 한 번의 대화에서 시작되는 변화임을 이제는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