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디톡스

필름카메라로 찍은 하루 — 기다림이 만든 진짜 감정

glittering-ripples 2025. 10. 22. 23:25

즉각적인 기록의 피로 — 디지털 카메라의 함정

스마트폰 카메라의 발전은 분명 인류에게 놀라운 편리함을 안겨주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몇 초 만에 사진을 찍고,
필터로 색을 보정하며, SNS에 즉시 공유할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필자는 어느 순간 그 편리함이 감정의 피로감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카메라 앱을 여는 순간,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평가받을 장면’을 만들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압박이 따라왔습니다.

여행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감탄하던 찰나에도
‘이 각도에서 찍으면 예쁠까?’ ‘빛이 부족한가?’ 같은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사진을 남기는 행위가 ‘현재를 느끼는 시간’을 대신하게 된 것이죠.
결국 필자는 바다의 냄새와 바람의 소리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 순간의 감정 대신 수십 장의 비슷한 사진만 남기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사진은 많아졌지만, 진짜 기억은 희미해졌습니다.

그런 디지털 기록의 과잉은 어느새 필자에게 ‘몰입의 결핍’을 가져왔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사진을 찍고, 결과물을 확인하고, SNS에 올리고,
좋아요 수를 확인하는 그 짧은 루틴이 하나의 도파민 루프가 되어버린 것이죠.
순간의 감정이 아닌 즉각적인 자극만이 남았습니다.
아무리 예쁜 사진을 찍어도 이상하게 허전했습니다.
그때 필자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진짜 추억은 저장된 데이터가 아니라, 기억 속에 남는 감정이 아닐까?”

그 질문을 시작으로 필자는 ‘디지털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다른 기록 방식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필름카메라였습니다.
결과를 바로 볼 수 없고,
한 장 한 장 신중하게 찍어야 하는 느린 장치.
그 불편함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다시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기대가 들었죠.
그 기대감 속에서 필자는 중고 필름카메라 한 대를 손에 넣으며
디지털 디톡스의 첫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핸드폰 카메라 대신 필름카메라 활용하기

 

첫 롤의 설렘 — 기다림이 만들어낸 몰입

필름카메라를 처음 들고 나간 날,
필자는 오랜만에 ‘무언가를 새로 배운다’는 설렘을 느꼈습니다.
셔터를 누르는 감각, 셔터 소리의 묵직한 울림,
그리고 손끝에서 전해지는 기계적 질감까지 —
모든 게 디지털 카메라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한 장을 찍기 전, 자연스럽게 주변의 빛과 그림자를 살피게 되었고,
“이 순간을 정말 담고 싶은가?”를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는 수십 장을 연속으로 찍어버릴 수 있지만,
필름은 한 롤에 36컷, 때로는 24컷뿐입니다.
그 제한된 숫자가 오히려 집중력을 높였습니다.
‘한 번의 셔터가 한 번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진을 찍는 행위가 단순히 결과물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진심으로 바라보는 일’로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불안했습니다.
혹시 실패하면 어쩌지? 초점이 안 맞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불안이 기대와 몰입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과를 즉시 확인할 수 없기에 오히려 사진을 찍는 ‘과정’에 더 집중하게 되었죠.
빛의 방향, 공기의 질감, 사람의 표정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관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깨달았습니다.
‘기다림’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감정이 깊어지는 여백의 시간이라는 것을요.

며칠 후 현상소에서 사진을 찾던 날,
필자는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숨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각 사진 속엔 완벽하지 않은 빛과 그림자가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너무도 생생했습니다.
사진을 찍던 순간의 공기, 말하지 않았던 대화,
그리고 그때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났습니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사진을 ‘기억의 언어’로 바꾸어준 것이죠.
그 느림 속에서 필자는 ‘디지털 디톡스’가 무엇인지
몸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불완전함의 미학 — 필름이 담아낸 진짜 감정

디지털 사진은 언제나 완벽을 추구합니다.
노출이 과했으면 자동으로 조정하고, 초점이 어긋났다면 다시 찍으면 됩니다.

심지어 요즘은 보정 어플로 사진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필름은 그렇지 않습니다.
빛이 조금만 과해도 하얗게 날아가고, 초점이 어긋나면 그대로 남습니다.
처음엔 그 불완전함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왜 이렇게 어둡게 나왔지?” “이건 흔들려서 쓸 수 없겠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필자는 그 ‘흔들림’과 ‘오차’ 속에서
오히려 인간적인 온기와 진짜 감정의 잔상을 발견했습니다.

디지털 사진이 ‘정답’을 보여준다면,
필름사진은 ‘감정’을 보여줍니다.
사진마다 미세하게 다른 색감,
때로는 예상치 못한 빛의 번짐이나 거친 질감은
그날의 기분과 날씨, 그리고 촬영자의 마음 상태를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그 불완전함은 오히려 완벽한 기록보다 더 생생했습니다.
필자는 필름 현상된 사진을 보며
“이건 실패작이 아니라, 그날의 공기까지 남긴 작품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인물 사진을 찍을 때 그 차이는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찍을 때는 표정이 조금만 어색해도
“다시 한 번 찍자”라고 말하곤 했지만,
필름카메라를 사용할 때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시 찍을 수 없다는 전제가 있었기에,
오히려 사람의 자연스러운 표정과 순간의 진심이 담겼기 때문입니다.
한 장 한 장이 ‘가식 없는 관계의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때 필자는 깨달았습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완벽한 결과물보다,
불완전한 한 장의 필름이 더 진실한 인간의 순간을 남긴다는 것을요.

그 후 필자는 필름사진을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디지털 디톡스의 도구’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에는 휴대폰을 보지 않게 되었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조급함이 사라졌습니다.
‘즉시 확인’ 대신 ‘기다림의 여유’를 배우는 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자연스럽게
디지털 세상 속에서 잃어버렸던 ‘감정의 속도’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느림이 준 선물 — 필름이 알려준 디지털 디톡스의 완성

필름카메라를 사용한 지 몇 달이 지나자,
필자는 일상의 작은 변화들을 하나둘씩 발견했습니다.
예전에는 사진을 찍자마자 SNS에 올려야 마음이 놓였지만,
이제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들이 많아졌습니다.
사진이 ‘공유의 수단’이 아니라 ‘나만의 기억’으로 남게 된 것이죠.
그 변화는 단순히 촬영 습관의 차이를 넘어,
디지털 세상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게 해주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들고 나가면 자연스럽게 ‘지금 여기’에 집중하게 됩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엔 인터넷도, 알림도 없습니다.
그 대신 빛의 각도, 사람의 표정, 공기의 온도에 더 민감해집니다.
한 장의 사진을 위해 10분 이상 자리를 지키며 기다릴 때면,
필자는 ‘기다림의 집중’이 얼마나 깊은 몰입을 만들어내는지 체감했습니다.
그 몰입은 디지털 세상의 빠른 속도와 정반대의 리듬이었습니다.
바로 그 느림이 디지털 디톡스의 본질적인 회복력이었죠.

필름카메라를 쓰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기록의 목적’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더 예쁘게, 더 완벽하게 찍고 싶었지만
이제는 “이 순간을 내 기억에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 변화는 사진뿐 아니라 삶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무엇이든 빠르게 처리하려던 조급함 대신,
조금은 천천히 느끼고, 기다리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그 느림이 필자에게는 새로운 정신적 여유와 집중력의 회복으로 다가왔습니다.

결국 필름카메라는 단순한 아날로그 도구를 넘어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마음의 정화 장치’가 되어주었습니다.
그 불완전함과 느림, 기다림의 미학이
필자에게 ‘기억의 밀도’와 ‘감정의 깊이’를 되찾아주었습니다.
이제 필자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도
한 번쯤은 셔터를 누르기 전 멈춰서 생각합니다.
“이 순간을 정말 남기고 싶은가?”
그 질문 하나가 필자의 일상 전체를 바꾸어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