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디톡스

음악 듣기를 다시 레코드와 CD로 즐겨본 후기

glittering-ripples 2025. 10. 10. 00:33

사운드의 홍수 속에서 — 디지털 음악 피로를 느끼다

하루의 대부분을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는 게 습관이 된 지 오래였습니다.
아침에는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이어폰을 끼고,
점심시간에는 유튜브 음악을 백그라운드로 틀고,
퇴근길에는 플레이리스트를 자동 재생으로 두었습니다.
필자는 늘 “음악 없이는 하루도 못 산다”고 말했지만,
어느 날 문득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음악이 주는 감동이 아니라,
소음이 없는 공백이 두려워서 계속 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알아서 추천해주는 곡들은 편했지만,
그 속에는 ‘나의 선택’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플랫폼 알고리즘이 기분을 대신 읽고,
취향마저 자동으로 정리해 주니 편리함 속에 피로가 찾아왔습니다.
음악이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데이터 흐름의 일부가 되어 있었던 거죠.
노래는 많았지만 기억에 남는 곡은 없고,
소리는 풍성했지만 마음은 점점 공허해졌습니다.

특히 직장을 그만두고 블로거로 전향한 뒤에는
하루 대부분을 혼자 보내다 보니
음악을 더 자주 틀어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음악이 늘 배경이 되자
집중력이 떨어지고, 머릿속이 늘 산만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편리함의 반대편에는 ‘감각의 무뎌짐’이 있다는 사실을요.

그 무렵, 우연히 지나치던 레코드숍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귀를 멈추게 했습니다.
턴테이블의 바늘이 살짝 긁히는 소리,
그 뒤를 따라 나오는 부드럽고 깊은 울림.
순간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따뜻해졌습니다.
그건 깨끗한 음질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는 소리였습니다.
그날 이후 필자는 결심했습니다.
음악을 다시 ‘듣는 경험’으로 되찾아야겠다고요.
그래서 첫 번째 디지털 디톡스로 ‘아날로그 음악’을 선택했습니다.

 

음악 듣기를 다시 레코드와 CD로 즐겨본 후기

 

첫 아날로그의 어색함 — 불편하지만 새로운 즐거움

오랜만에 꺼낸 CD플레이어와 중고로 구입한 턴테이블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을 때,
마음 한켠에는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걸 과연 꾸준히 들을 수 있을까?”
“너무 번거로운 건 아닐까?”
스마트폰에서 손가락 몇 번이면 되는 일인데,
레코드판은 먼지도 털어야 하고,
바늘을 올릴 때 손이 조금만 흔들려도 소리가 튀었습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A면과 B면을 바꾸는 일조차 귀찮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이 실험의 핵심이었습니다.
플레이리스트의 자동 재생이 사라지자
필자는 처음으로 ‘다음 곡을 기다리는 시간’을 경험했습니다.
디지털에서는 3초의 공백도 허용되지 않지만,
레코드에서는 그 짧은 침묵마저 음악의 일부였습니다.
그 사이에 마음이 호흡을 찾았고,
음악 한 곡 한 곡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낯설고 불편했지만,
조금씩 그 감각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CD의 재킷을 꺼내 트랙 목록을 읽는 일,
턴테이블 위에 앨범을 올리고 천천히 바늘을 내리는 순간.
그 모든 과정이 음악의 ‘도입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리가 나오기 전의 정적이 주는 묘한 설렘 —
그건 디지털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습니다.

필자는 그때부터 매일 저녁 ‘아날로그 음악 시간’을 정해 두었습니다.
스마트폰을 거실에 두고, 노트북을 닫은 뒤,
레코드 한 장을 선택해 온전히 그 음악만 들었습니다.
처음엔 20분도 집중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한 면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방해 없이 음악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필자는 세상의 소음이 줄어들고
자신의 감정이 또렷이 들리는 걸 느꼈습니다.
디지털의 편리함 속에서 잃어버렸던 감각이
조용히 되살아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감각의 회복 — 음악이 다시 감정을 깨우다

레코드의 사운드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노이즈가 섞이고, 간혹 바늘이 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불완전함이 음악을 더 따뜻하게 느끼게 했습니다.
디지털 음원처럼 정제된 음이 아니라,
공기 속에 섞인 숨결이 그대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음악을 듣는다는 건 단순히 ‘소리를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감정을 교감하는 일이라는 걸요.

예전엔 노래를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턴테이블 앞에 앉아 음악을 듣는 동안에는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집어 들 수 없었습니다.
눈은 앨범 커버를 바라보고, 귀는 소리에 집중하며,
몸 전체가 하나의 리듬을 따라가게 되었죠.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음이 조용히 정리되고,
감정의 파도가 한층 잔잔해졌습니다.

어느 날은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LP를 들었습니다.
그날따라 가사가 마음 깊이 스며들었는데,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사 자막’ 없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디지털 스트리밍은 늘 시각적인 정보와 함께 재생되지만,
레코드는 오직 ‘소리’만으로 감정을 전합니다.
그 단순함 속에서 마음이 더 크게 움직였습니다.
눈으로가 아니라, 귀로 느끼고 가슴으로 반응하는 경험이었죠.

그때부터 음악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디지털 디톡스의 한 형태가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의 빛이 사라지고,
플레이 버튼 대신 바늘을 조심스레 내리는 손끝의 집중이 생기자,
하루 중 유일하게 ‘잡념이 사라지는 시간’이 만들어졌습니다.
음악을 듣는 동안엔 시간의 흐름조차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건 디지털 시대에는 좀처럼 얻기 어려운,
진짜 몰입의 순간이었습니다.

 

아날로그가 준 배움 — 느림 속의 여유와 몰입

이 실험이 끝난 후, 필자는 자연스럽게 다른 생활의 리듬도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레코드를 들으며 ‘한 곡 한 곡을 끝까지 듣는 습관’이 생기자
일을 하거나 글을 쓸 때도 ‘끝까지 집중하는 태도’가 따라왔습니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늘 알림이 끊임없이 흐르고,
하나의 일을 하면서도 다른 창을 열어보게 됩니다.
하지만 아날로그 음악은 ‘하나의 순간’만을 허락했습니다.
그 느림과 집중의 경험이, 어느새 삶 전체의 리듬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또한 음악을 들으며 기다림의 미학을 배웠습니다.
레코드 바늘을 올리고 소리가 나오기까지의 몇 초,
그 사이의 침묵이 주는 긴장감과 설렘이 오히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즉시 재생’이 당연하지만,
아날로그는 기다림 속에서 감동을 준비하게 합니다.
그 기다림이야말로, 우리가 잊고 있던 인간적인 속도였습니다.

CD나 LP를 정리하는 시간,
앨범 커버를 손끝으로 만지며 음악을 고르는 순간,
이 모든 과정이 '나를 위한 작은 의식(ritual)'이 되었습니다.
디지털은 효율을 추구하지만,
아날로그는 과정을 중시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음악을 듣는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고,
그건 단순한 취향의 변화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였습니다.

결국 필자는 이 경험을 통해
느림이 결코 뒤처짐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음악 한 곡을 온전히 들을 줄 아는 사람은,
삶의 순간도 천천히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이 되니까요.
이제 필자에게 디지털 디톡스란
단순히 스마트폰을 덜 보는 것이 아니라,
느림과 집중, 그리고 감정의 회복을 되찾는 여정입니다.